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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교회론과 성령론을 연구한 틸리히는 바울을 성령의 학자라고 불렀다.바울의 신학은 여러방면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바울신학의 배경과 원전은 첫째가 바울 이전의 예루살렘교회와 제자들로 부터 듣고 배운 것과, 둘째는 그의 특유한 성령체험에 의한 것이다.
분명히 바울도 초대교회로부터 많이 배웠거나 그들의 관례에 따라 생활(방언.이적.능력.그리고 병고침. 환상,투시등)하며 이같은 사역을 통해 바울은 큰 기쁨을 느꼈다.
바울은 베드로가 체험한 것과 초대교회가 체험한 것이 그리스도가 약속해 준 선물이라고 믿었다. 바울은 오순절의 펜타코스트의 경험은 가지지 않았으나 이 사건은 바울이 체험한 성령역사의 모델이 되었다.(갈3:14. 엡1:13)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일어나는 묘사가 동일하다.(롬15:13, 고전2:4, 엡3:16). 이 말은 바울의 성령역사에 대한 표현이 초대교회의 생태와 같다는 말이다.
성령의 은사를 열거하는데 있어서 초대교회와 바울은 비슷하다. 예를 들어 고린도 전서12장8절에서 10절까지의 성령은사의 열거는 초대교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성령의 체험을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이해했다. 고린도후서3장17절에서 바울은 '주의 영이시라'라고 했고, 고린도전서15장 45절에서는 '마지막 아담'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베드로와 초대교회는 성령을 주가 보내준 영으로만 생각했었다.
바울은 성령을 인격화해서 이해했다. 바울은 로마서8장26에서 27에 보면'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후에 교부들이 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바울은 성령의 사역을 도덕화였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사역을 초자연적인 것으로만 이해하였으나 바울은 오히려 논리적이고 건덕적인 결실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특히 갈라디아서 5장22절의 9가지 은사는 윤리적인 덕목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성령안의 생활인 것을 강조한다. 성령안의 생활은 물론, 그리스도 안의 사랑의 생활로 나타난다.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3장을 우리는 사랑의 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통일적 공동체이다. 신은 교회 안에 내재하는 성령을 통해 교인을 뽑아 교회직무를 맡기신다.
즉,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성과 성령의 인격적인 면에서의 교회안에서의 사역이 분명하게 밝혀진 것이다.이처럼 신약성서에 있어서는 요한과 바울에 의해서 성령의 본질과 기능,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가 밝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두 가지 관념 때문에 바울의 개인적 영성생활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나는 이신칭의 교리이다. 인간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오직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바울의 주장은 개신교의 교리적 주춧돌이 되어왔다. 그러다 보니까 바울이 동시에 인간의 행위와 영성 훈련의 중요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강조하였는가 하는 것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고전 5:6)는 말씀처럼, 바울은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 의존성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세운 교회들에 대한 연구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압도되어서, 개인적 차원의 삶에 대한 관심은 거의 부각되지 못하였다. 바울은 공동체가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개의 구성원이 모여 튼튼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도자인 자신부터 개인적으로 영적 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고전 11:1; 살전 1:6).
무엇보다도 바울의 영성 훈련을 엿볼 수 있는 본문은 다음과 같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egkrateuetai)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5-27). 바울은 자신이 열성적으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교와 목회 활동 그 자체가 자동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입증해주는 안전망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한다. 고린도 교회를 교육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로마서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강조하기보다는(롬 5:16,21), 몸을 쳐서 복종케 하는 집중적인 절제의 훈련을 강조한다. 이 “절제한다”는 동사는 바울이 실천하는 영성 훈련의 내용 즉 “금욕적 훈련”을 암시한다(이 동사는 성적 금욕과 관련되어서 고린도전서 7장 9절에 단 한 번 더 나타나고, 신약성서 다른 곳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바울이 영성 훈련에 대해서 어떠한 한 가지 방법을 절대화하지 않고(고전 7), 일반적인 금욕적 생활에 대해서 자세한 안내서를 제시하지도 않지만, 초기 기독교의 금욕주의 운동을 논할 때 흔히 사용하는 세 가지 지표, 즉 소유, 음식, 성 생활을 지표로 해서 바울의 개인적인 영적 생활을 추적해 볼 수 있겠다. 우선 바울은 노동하는 장인이었다. “천막을 만드는 자”(행 18:3)로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한다(살전 2:9). 이러한 장인 생활은 도시 빈민의 절대 빈곤과는 다른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밤낮으로 일해야만 하는 계층에 속하였다. 바울 자신이 당시 많은 철학자들처럼 귀족 집안의 거주 교사로서 물질적으로 보다 안정된 생계를 꾸려나가는 흔한 길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질적 결핍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도의 생활은 일종의 자발적인 금욕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목회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교회의 도움도 거절하였다(고전 9:12). 그러나 그의 노동의 목표는 복음의 효과적 전파를 위한 “독립”적 삶이었으며, 가난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그는 교회들의 선물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알았으며(빌 4:15-16), 자신의 물질적 상황을 통해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것과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고 고백한다(빌 4:11-13). 다음으로 바울의 식생활을 보면, 그는 금식 자체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먹지 못하고, 주리고, 굶는”(고전 4:11; 고후 6:5; 11:27) 경우를 언급하지만, 이것은 금식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 선교 활동에서 견디어 내야 했던 난관의 일부로서의 배고픔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음식에 대한 태도를 고린도전서 8장 8절에서 추측해볼 수도 있다:“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바울이 성적으로 금욕의 생활을 하였고, 그의 사도적 생활 전체에 걸쳐서 독신으로 지냈다는 점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고전 7). 그는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 반문한다(고전 9:5). 그러나 그의 성적 순결의 삶은 관계성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바울은 남녀 선교 동역자들과의 관계에서 신실하고 풍요로운 우정의 삶을 풍성하게 누렸고(롬 16), 교회 공동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소위 양성적 권위를 통해서 목회적, 교육적 관계를 심화시켰다(살전 2:7,11).
중세 수도원 운동에서 삼대 복음서 원리라고 알려진 순종, 청빈, 순결은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일화에 기초하였다고 한다. 영생을 얻기 원하는 부자 관리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자 근심하고 떠나는 그를 보며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데서 이러한 원리들을 유추하였다는 것이다(눅 18:18-30). 그러나 바울 서신에 대한 고찰은 바울이 세상 속에서 교회를 세우고 선교하는 활동적 삶 속에서 이미 이러한 원리를 일상적으로 또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고 살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목회신학자 홈즈(Urban T. Holmes)는 성직안수 신학(the theology of ordination)을 추구하려고 할 때에 이러한 금욕적 훈련들이 그 자체가 결코 목적이 아니며 또한 문자적으로 적용될 수도 없지만, 목사의 전문적 훈련을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도구적 수단으로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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