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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시대는 A.D. 30년경부터 기독교가 공인된 A.D. 313년까지의 시기에 해당된다. 교회가 최초로 나타나게 된 것은 예루살렘 원시적 공동체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며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고 재림을 믿고 모여서 말씀을 연구하고 전혀 기도에 힘쓰며 서로 사랑을 나누고 구제에 힘썼으며 서로 애찬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들의 심령은 세속을 떠나 순수함을 간직한 채 모이기를 힘써 사실상 영성에 힘을 기울였다. 성서를 보면, 초대교회는 영성의 훈련과 생활이 조화되었다. 기도와 성서연구 그리고 사랑의 모임이었다. 이어서 사도들은 이러한 영성생활을 잘 계승하였고 신학적으로 정립하였다. 만일 초대교회가 열정만 가지고 끝났다면 그 다음 시대가 기독교의 영성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대는 박해, 정치적인 압박, 타신앙인들과 그들이 신봉하는 절대자에 대한 경배예절의 차이에서 오는 대립,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유래하지 않은 다른 영지적(靈知的)인 사상과의 충돌을 들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은 이러한 복잡한 상황속에서도 혼합종교주의적인 요소들로부터 헤어나려 노력했던 시대의 영성에 있다. 이 시대는 일치와 연대성, 창조성을 지녔던 시대였으며 교회가 막 세상과 접촉을 시작하는 자기 개방의 시대였다.
초대교회의 영성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나타난다. 하나는 관조적이며 정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동적이요 실천적인 영성이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주로 회개의 세례(막1:4), 마음의 청결(마5:3)로서의 회개(Metanoia)와 청빈생활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고, 사도 요한에게서는 빛과 어두움가운데서 빛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로 향한 십자가 사랑안에서 그 영성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요한의 영성은 하나님 신비주의(God-Mysticism) 혹은 성령 신비주의(Spirit-Mysticism)로 표현된다. 내적이면서도 정적인 영성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바울에게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의 연합과 또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기 위한 것으로서(골1:26) 표현되었고, 그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은 동적이고 실천적인 삶으로 이끌었다. 즉 동적인 영성으로 표현되었다. 사실 이러한 것은 예수님의 종말론적인 개념하의 새창조의 영성을 이루는 두 가지 영성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종말론적 개념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내면의 영성, 정적인 영성을 갖게 하였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새창조적 영성은 그들로 하여금 성령의 역동적인 삶을 살게 하였던 것이다.
초대교회 기독교는 당시의 헬라철학의 흐름인 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신플라톤주의의 핵심은 인간이 금욕적인 삶을 통해서, 세상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정신적인 격리의 삶을 산다면 영원의 세계와 통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보다는 자신의 금욕적인 삶을 통해 영원을 소유한다는 점에서 비기독교적인 것이었다.
이와함께 영지주의와의 투쟁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힘겨운 투쟁이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영지(靈知 : Gnosis)인데 이것은 영성이고 영적인 것을 가지고 영을 가르치며 구원을 가르치는 것이다. 영성이란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이미 기독교와 대립되는 것이었으며 기독교는 이 영지주의를 인하여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되었다. 문제가 된 것은 이원론(二元論)이다. 이것은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모든 것에는 두 가지 원리가 있는데, 빛과 어두움, 선과 악등이 주장되었다. 여기에서 도출된 결과는 물질세계 즉 우리의 지상생활에 관련된 것은 모두 악한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악의 물질세계를 극복해야 해방되고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대교회의 영성은 금욕적 방법을 강조하는 이단사상에서 기독교 영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기간이었고, 이런 연고로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닦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마음을 청결과 단순성을 중요시하였고, 동적인 영성보다는 관조적 정적인 영성운동의 흐름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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