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자료
우리는 앞에서 무념적 기도와 상념적 기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 형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았다. 기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운동, 즉 만남의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특정 장소나 방법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육체 노동이나 신체 운동 등도 기도에서의 무념적 효과를 지닌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활동 중에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개방된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기도가 때때로 오해받아 온 것처럼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되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이웃과의 관계성을 통하여 열매를 맺으며, 이웃과의 관계성은 현실 가운데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수직적인 관계의 형성 외에 일상적 삶이라는 수평적 성격을 띠게 된다. 매쿼리는 기도가 삶을 떠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기도는 ‘사고로서의 기도(prayer as thinking)'임을 강조함으로서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기도는 동정적인 사고(Compassionate thinking)이면서 동시에 책임적인 사고(Responsible thinking)이다. 특히 중보 기도는 동정적 사고를 내포한다.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중에 우리의 삶은 모두 신비한 유대로 함께 결속되어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드린 사람을 초월하여 그 대상자에게까지 역사하게 되며, 기도 중에 전 인간 실재가 신적 실재에 관계되는 것이다. 이렇듯 기도가 실재와 관계하게 될 때에 그것은 반드시 행위를 유발하게 된다. 즉,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이끌어 내어 타인을 향한 사랑을 증가시키고 공동체 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동정적인 사고로서의 기도이다. 동시에 기도는 책임적 사고이다. 책임성이란 응답성(Answerability )을 의미하는데, 기도 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응답하고 동시에 책임을 지게 된다. 이웃에 대한 책임은 책임성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며, 기도 중에 인식하는 자신과 이웃에 대한 책임성은 곧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성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의 책임성이라고 할 때 그것은 책임적 행위를 의미한다. 기도와 행위, 내면성과 외면성은 상호 밀접한 관련성으로 결합되어져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상호 작용한다. 기도는 세상을 해석하며, 세상은 기도를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세상 속에서 일어난다.
기도와 삶의 일치적 추구는 머튼에게서도 활발하게 추구되는 것을 본다. 그는 ‘관상이란 세상적 관심으로부터 물러선 삶의 유리된 한 영역이 아니라, 총체적인 삶의 바로 그 온전함이다. 그것은 삶과 모든 삶의 행동들의 면류관이다’라고 하면서 관상없는 투신(Commitment)과 투신없는 관상을 모두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진정한 영적인 삶이란 인간의 가장 깊은 내적 자아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뻗어가고 관계를 맺는 그러한 삶이라는 의미에서 전인적인 것이며, 인간 삶의 영역에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적인 삶에서는 두 종류의 경험을 동시에 하게 된다. 첫째로,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게 되며, 둘째로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것을 인식한 사람에게 실제적으로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적 관상과 외적 행위는 다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에서의 양면에 불과하다고 하였으며, 그의 관상과 기도의 생활은 한번도 인간적 관심과 사회적, 정치적 문제와 분리된 적이 없었다.
삶을 통한 영성 훈련의 한 방법으로서의 기도는 이러한 기도의 실천적 의미를 갖는다.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은 일상적 삶 가운데로 확산되어야 하며, 초월적 기도의 경험이 삶의 순간 순간마다 새롭게 경험될 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성취될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 훈련자는 기도가 삶과 유리되어 개인적 종교성의 열락을 추구하는 방편이 도지 않도록 해야 하며, 기도의 능력은 개인적 삶과 공동체적 삶의 능력으로 연결되고, 삶의 현장에서 기도의 출발점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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