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은 하나님 사랑이라는 수직적 차원 외에 이웃 사랑이라는 수평적 차원을 포함한다. 이 수평적 차원의 영성은 삶의 통하여 구현되는 바, 영성의 본질로서의 인간의 삶의 교회 생활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을 지칭한다. 따라서 교회 이외의 세속 사회는 영성 훈련의 또 다른 장이 되는 것이다. 동방 교회의 영성은 산중의 폐허나 동굴 혹은 사막에서 기도, 고행, 명상, 노동을 중심으로 한 독거 생활을 통하여 형성되었다. 이는 수도 생활을 세속 생활로부터 격리시킨다는 의식을 가져왔으며, 수도원으로 발전된 후에 이에 대한 규율이 세워지고 제도화되었지만, 수도원내의 수련이라는 기본적 성격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후기에 가면 스투디우스 수도원을 중심으로 활동적이고 참여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더욱이 서방 교회(중세)의 수도원 운동은 내면 성찰의 차원을 넘어서 육체적, 정신적 노동뿐 아니라 학문과 예술에까지 수도의 영역을 넓히게 되고, 탁발 승단에 이르러서는 수도원이라는 공간적 수도 영역을 사회 속으로 확산,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선교의 역동성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16세기 이후의 예수회 세계 선교 운동은 이러한 수도원의 사회 지향적 역동성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교 개혁 이후의 개신교 영성도 개혁자들의 두 왕국 사상을 근거로 교회와 함께 세속 세계를 모두 하나님의 통치하에 끌어들였으며, 17세기의 경건주의 운동으로부터 웨슬레의 부흥 운동에 이르기까지 교회 내적 영성을 사회로 확장시키기 위한 노력이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현대의 에큐메이칼 영성은 이러한 사회 지향적 영성의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칼 영성은 교회의 일치 뿐 아니라 세계의 일치와 피조물과의 일치까지 추구하는 영성으로 확대되었다. 세계를 향하여 개방된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 요구되며 인권과 사회 정의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선교도 인간이나 교회의 선교가 아닌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되며 사회의 아픔과 불의를 외면하지 아니하는,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성’, ‘억압받는 자들과의 연대성’을 발전시킨 해방의 영성에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영성은 본질상 교회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회 내적으로 경험되고, 개발되고, 훈련된 영성은 사회 속에서 올바로 구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 자체를 통하여도 영성은 형성되어야 한다. 여기에 사회가 영성 훈련의 장이 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영성은 교회를 통한 훈련으로 개발되지만, 못지 않게 일상적 삶을 통해서도 개발된다. 이러한 수평적 영성은 수직적 영성의 사회적 적용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일 자체의 영성을 의미한다. 즉, 일상 생활이나 일 자체의 영성의 독립성과 중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가는 사업가로서의 영성이 있고, 노동자는 노동자로서의 영성이 있으며,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농부는 농부로서, 운동 선수는 운동선수로서, 가정 주부는 주부로서 나름대로의 영성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것을 리는 ‘Lifework Spirituality'라고 표현하였으며, 종교 개혁자들이 만인제사장설에 근거하여, “직업은 소명이며 세속적 삶을 거룩하게 사는 것”이라고 표현한 의도이다. 그러므로 삶은 영성 훈련에 있어서 중요한 영역이며, 인간의 통전적 삶의 장인 사회는 영성 훈련의 중요한 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 생활은 교회 생활과 더불어 균형있는 영성 생활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